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과 조지프 스티글리츠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두 사람 모두 현대 경제를 ‘카지노 경제’라고 칭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노엄 촘스키와 ‘불평등 경제’의 저자 토마 피케티도 한목소리로 ‘카지노 경제’라고 불렀다.

많은 사람이 투기와 투자는 다르다고 한다. 도박이 운의 게임이라면 투자는 과학의 게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역사적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봐도, 오늘날 금융자본주의의 구조를 뜯어봐도 투기와 투자의 분리, 운과 과학의 이분법은 설득력을 잃고 만다. 로또·카지노·빠찡코 등 투전판이라는 오명을 쓴 행위들과 주식·보험·선물 등 점잖게 제도화된 것들의 간극은 신화일 뿐이다.

그래서 토마 피케티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운은 기술이나 노력보다 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시장은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는 복권”이라고 말했고 폴 크루그먼은 “경제는 거대한 우연의 게임이고 하우스가 항상 우위를 점한다”며 세계 경제를 카지노에 빗대 말했다.

‘대박몽’ 시리즈는 그 신화적 이분법을 깨면서 시작한다. 투기로 폄훼된 것들, 빈자들의 비윤리적이고 비이성적 자기 파괴 행위로 여겨지는 ‘음지’의 경제들을 역사의 호흡으로 살펴본다. 또 운명의 옥조임에 맞선 다수 서민들의 초월적 열망이 어떻게 이 비공식적 경제 행위들과 ‘결탁’해 왔는지도 읽어 보려고 한다. 시리즈 첫째로 복권 이야기를 택했다.

2억3000만 유로(6월 16일 이탈리아 투스카니), 1억8000만 파운드(6월 13일 영국 더비셔), 2억 유로(6월 7일 프랑스 파리), 2억9000만 헤알(6월 10일 브라질 상파울루), 10억 루블(6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 16억 엔(5월 29일 일본 오사카), 7억 달러(5월 28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난 한 달 사이 세계 주요국에서 터진 로또의 최대 당첨금이다.

이 중 최소 금액을 기록한 러시아의 경우 우리 돈으로 154억원, 최대는 미국의 8900억원이다. 롯데쇼핑 1만1200명의 종업원이 2022년 한 해 땀 흘려 일군 영업이익 3900억원의 2.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이 모든 잭팟의 당첨자들은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통상 거액 당첨금이 수령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당첨 사실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 심장 마비로 사망한 경우, 새 인생 설계에 열중하는 등 여러 유형이 있다. 또 언론의 관심이 잦아들기를 기다리거나 주변 괴롭힘 혹은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도록 몸을 낮추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초월적인 ‘한 방’

사상 최대 복권 당첨금 상위 10위 모두 미국이 싹쓸이했다. 복권의 역사도 길지만 이민과 기회의 나라인 만큼 대박을 향한 꿈도 클 것이다. 상위 10위 모두 2015년 이후 나왔다. 지난 7~8년 사이 물가 상승이 가팔랐고 로또 구매자 수가 확연히 늘어났기 때문이다.

단 한 장의 복권이 만든 역사상 최대 상금은 20억 달러, 약 2조5600억원이다. 1분기 삼성전자 영업이익 6000억원의 4배가 훌쩍 넘는 규모다. 이를 두고 핵폭탄급 ‘한 방’이라고 해야 할까.

미국은 여타 진기록도 풍성하다. 하루 동안 판매된 최대 복권 수는 1억2000만 장, 2012년 3월 17일 성 패트릭 기념일에 팔렸다.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판매된 복권 수는 무려 38억 장이다. 2019년 인구가 3억3000만 명이었으니 국민 전체가 평균 10장 이상의 복권을 구매한 꼴이다.

2015년 파워볼 추첨에서는 11명이 1등에 당첨돼 각각 3억9000만 달러(약 5000억원)의 ‘돈벼락’을 맞았다. 한국도 2022년 6월 동행복권 1등에 50명이 당첨된 사례가 있다. 상금은 1인당 4억4000만원 정도로, 1인당 5000억원이라는 미국 파워볼 규모에 비교할 수준은 아니다.

<표1>에서처럼 미국 이외 지역 잭팟의 대부분은 유럽에서 나왔다. 유럽에서 슈퍼 잭팟이 빈번한 이유 중 하나는 다국적 복권의 등장이다. 유로밀리언즈(EuroMillions) 복권은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영국·아일랜드·벨기에·스위스·오스트리아·룩셈부르크 등 9개국을 아우르는 범유럽 복권이다. 1억 4000만 분의 1이라는 극소 확률에도 여러 나라의 돈이 모여 ‘파이’를 키웠다. 근대 복권의 종주국 영국은 잭팟 대열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다. 가장 대중적인 내셔널 복권(National Lottery)은 매주 2200만 명의 구매자를 보유하지만 2010년에는 26회 연속 1위 당첨자가 누락되는 씁쓸한 기록을 보유한다. 그 대신 복권의 공적 면모만큼은 잘 살려 왔다. 1994년 출시 이후 적립된 기금 450억 파운드(약 74조원)가 학교·병원·운동시설·문화유산·예술·커뮤니티 프로젝트 등 60만 건 이상의 공익 사업에 투여됐다.

대박의 꿈으로 뒤척이는 세계

세계복권협회(WLA)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복권 시장 규모는 3665억 달러다. 2023년도 한국의 국가 예산 638조원의 74%에 달하는 액수다. 매출만 보자면 1810억 달러로, 같은 해 마이크로소프트의 매출 1680억 달러를 웃돈다. 세계 1위 미국 복권 시장은 2021년에 80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고 둘째로 큰 유럽 시장은 500억 달러를 달성했다.

<표2>는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여준다. 복권 판매 총액, 1인당 구매,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출 모두에서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프랑스 등 남유럽 국가들의 강세가 뚜렷하다. 북유럽국 중에서는 노르웨이·아일랜드·스위스·핀란드·벨기에가 강세다. 과열과 사행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 한국의 ‘성적’은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인구 대국이 결집한 아시아 시장은 여전히 미국과 유럽에 비해 열세다. 예컨대 인구 3억3000만 명 미국의 파워볼 복권 판매가 25억 장이었던 2021년 인구 14억 명 중국의 슈퍼 로또 복권 판매량은 15억 장에 그쳤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은 올해를 기점으로 세계 2위 규모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인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인구 대국의 도시화와 소득 수준 향상이 복권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젊은층이 온라인 복권에 몰리는 것도 성장 요인으로 꼽힌다.

아시아 1위 중국 시장은 2022년 170억 달러, 2위 인도가 100억 달러, 3위 일본 62억 달러, 4위 한국이 51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중국의 슈퍼 로또가 아시아 최대 규모다. 2012년 베이징에서 당첨된 5억7000만 위안(약 1000억원)이 최대 잭팟으로 기록된다.

일본 복권의 역사는 17세기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근대 복권의 출발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전쟁 자금 조달을 위해 시작됐다. 현재 매출은 연간 1조 엔(약 9조원)이고 2021년 11억8000만 장, 2022년에는 12억2000만 장의 복권이 판매됐다. 1억2500만 명의 인구를 감안하면 1인당 연평균 10장씩 구매한 셈이다.

‘다카라쿠지야’라는 복권 전문점이 즐비하고 온라인·전화로도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발생한 일본 사상 최대 상금 16억 엔(약 150억원)은 2003년 4월 한국에서 터진 최대 상금 407억원에 비하면 ‘약소’하기 그지없다.

복권에는 남녀노소가 없다. 운과 대박은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네덜란드의 요한 후이징가 씨가 2017년 스타츠로테리 복권 1등에 당첨됐을 당시 그는 102세였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최연소자는 2015년 캐나다 온타리오 주 로또 맥스 100만 달러에 당첨된 11세 소년이었다.

작고하신 아버지도 서랍 빼곡이 주택복권을 모아 두셨었다. 100원도 맞추지 못한 몹쓸 종이 조각들이었지만 차마 버리지 못하셨다. 그 집착은 무엇이었을까. 삶·승리·탈주 혹은 초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지갑 깊숙이 꽂아둔 복권은 무엇에 대한 염원인가. 인생 역전의 비릿한 꿈으로 축축해진 당신의 로또 한 장 말이다.




최정봉 사회평론가, 전 NYU 영화이론과 교수